2026 벤처투자 표준계약서 개정 총정리: 예전 계약서와 뭐가 달라졌나
최근 투자 라운드를 준비하는 창업자들에게서 부쩍 자주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투자사에서 계약서 초안을 받았는데 예전이랑 구성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어디부터 봐야 하죠?" 3년 만에 벤처투자 표준계약서가 개정되면서, 실무에서 오래 쓰이던 계약서의 뼈대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2026년 개정된 벤처투자 표준계약서에서 무엇이, 왜 달라졌는지를 정리합니다.
계약서를 처음 받아보는 창업자든 예전 버전에 익숙한 분이든, 이 글 하나로 큰 그림을 잡을 수 있도록 핵심 변화 위주로 짚겠습니다. 각 항목에는 실제 투자 현장에서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함께 덧붙였습니다.

왜 3년 만에 다시 바뀌었나
벤처투자 표준계약서는 정부와 관련 기관이 권고하는 계약서 양식입니다. 강제는 아니지만 실무에서 상당수 투자가 이 틀을 기준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표준계약서가 바뀌면 현장 관행 전체가 따라 움직입니다.
이번 개정은 2023년 이후 3년 만에 이뤄졌습니다. 그동안 쌓인 법령 개정 사항, 현장에서 조율이 필요했던 문제들, 글로벌 투자 환경과의 정합성 요구가 한꺼번에 반영됐습니다. 방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창업자 부담을 줄이고 계약 구조를 국제 기준에 맞춘다"입니다.
다만 이 방향이 모든 당사자에게 똑같이 반가운 것은 아닙니다. 제도가 창업자 쪽으로 기울수록 투자자 입장에서는 안전장치가 줄어드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이 온도차가 이번 개정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입니다.
계약서가 두 개로 나뉘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하나였던 계약서가 두 개로 분리된 것입니다.
예전에는 투자 거래 조건과 투자 이후의 경영 규칙이 한 문서에 섞여 있었습니다. 이번 개정에서는 이를 투자계약서(SPA)와 주주간계약서(SHA)로 나눴습니다.
투자계약서에는 어떤 주식을 얼마에 발행하고 언제 투자를 완료하는지 같은 거래 자체를 담습니다.
주주간계약서에는 투자 이후의 동의권, 주식 처분 규칙, IPO나 M&A, 투자자의 회수 같은 지속적인 관계를 담습니다. 계약서 종류도 기존 32종에서 5종으로 정리됐습니다.
왜 나눴는지는 후속 투자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습니다. 시드, 프리A, 시리즈A, 시리즈B로 투자자가 계속 늘어나면 매번 새로운 투자계약을 맺게 됩니다. 이때 주식 발행 조건과 모든 주주가 지켜야 하는 경영·주식처분 규칙을 한 계약 안에 계속 쌓아두면, 라운드마다 서로 다른 권리와 의무가 충돌하기 쉽습니다.
거래 조건(SPA)과 지속적 규칙(SHA)을 분리해두면 이 충돌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해외 투자자에게도 익숙한 구조입니다.
실무에서 보면, 분리형은 라운드가 쌓인 회사일수록 진가를 발휘합니다.
반대로 시드 단계 한 번으로 끝나는 회사라면 당장 체감이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왜 두 장이지?"라고 당황하기보다, 앞으로 라운드를 이어갈 회사라면 오히려 정리된 구조라고 이해하는 편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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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CPS 대신 CPS를 기본으로 권고한다
두 번째 변화는 투자에 쓰이는 주식의 종류입니다.
그동안 국내 스타트업 투자에서 가장 익숙한 증권은 상환전환우선주(RCPS)였습니다. RCPS에는 우선주의 권리와 보통주 전환권에 더해, 일정 조건에서 회사에 투자금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환권까지 붙습니다.
이번 개정은 상환권을 뺀 전환우선주(CPS)를 기본 권고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상환권은 필요할 때만 붙이는 선택지로 돌린 것입니다. 배경은 이렇습니다. 상환은 배당가능이익이 있어야만 실제로 가능한데, 이익이 나지 않는 초기 스타트업에게 상환권은 실효성은 낮으면서 창업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조항이라는 지적이 오래 있었습니다.
여기에 회계 문제도 있습니다. RCPS는 상환 의무 때문에 스타트업 재무제표상 부채로 잡히는 경우가 많아, 자본 구조를 왜곡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습니다. 이 부담을 덜어주는 것도 CPS 권고의 배경 중 하나입니다.
여기서 짚어둘 점이 있습니다. RCPS가 표준계약서에서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다섯 유형 중 하나로 제공됩니다. 바뀐 것은 "기본값"이 CPS로 옮겨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현장의 온도차가 가장 크게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상환권이 초기 기업에서 실제로 행사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투자자에게 상환권은 회수 수단이 막혔을 때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남겨두고 싶은 조항입니다. 그래서 권고안이 CPS라고 해서 실제 계약이 곧바로 CPS로 넘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의 권고 방향과 투자 현장의 선택이 왜 엇갈리는지는 이 시리즈에서 따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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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픽싱 방식이 창업자에게 유리해졌다
세 번째는 리픽싱, 즉 전환가격 조정 방식입니다.
리픽싱은 투자 이후 회사 가치가 떨어졌을 때, 투자자가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가격을 다시 조정해주는 장치입니다.
예를 들어 투자자가 주당 1만 원에 투자했는데 다음 라운드를 주당 5천 원에 받게 됐다고 해봅시다. 이렇게 몸값이 떨어진 상태의 후속 투자를 다운라운드라고 합니다. 이때 전환가격을 어디까지 낮춰주느냐에 따라 창업자 지분이 얼마나 희석되는지가 크게 갈립니다.
기존 관행에서 자주 쓰이던 방식은 풀래칫(Full-Ratchet)이었습니다. 전환가격을 새 투자 가격인 최저가까지 그대로 끌어내리는 방식이라 투자자에게 유리하고 창업자 희석이 큽니다. 앞의 예라면 전환가격이 5천 원까지 내려가, 투자자가 받을 보통주 수가 두 배로 늘어납니다.
이번 개정은 이 대신 가중평균(Weighted Average) 방식을 기본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새로 발행되는 주식의 규모까지 함께 반영해 전환가격을 조정하는 방식이라, 조정 폭이 완만합니다. 같은 다운라운드라도 창업자 희석이 풀래칫보다 훨씬 작아, 창업자와 투자자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쪽에 가깝습니다.
정리하면 리픽싱의 기본값이 "투자자에게 최대한 유리한 방식"에서 "양쪽 균형을 고려한 방식"으로 옮겨간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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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관계인 연대책임을 제한한다
네 번째는 창업자 개인의 책임 문제입니다.
과거 투자계약에서는 회사가 부담하는 의무를 창업자 등 이해관계인이 연대해서 지도록 하는 조항이 흔했습니다.
회사가 잘못되면 창업자 개인이 투자금을 떠안는 구조였고, 이 때문에 실패한 창업자가 재기 불능에 빠지는 사례가 사회적 문제로 지적돼 왔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이해관계인의 연대책임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방향이 제도화됐고, 이번 표준계약서에도 그 취지가 반영됐습니다. 다만 이 변화는 이번 개정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라 몇 년 전부터 단계적으로 자리 잡아온 흐름이라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연대책임을 완전히 없앴다"는 것은 정확한 이해가 아닙니다.
정해진 예외 사유에 한해, 그것도 창업자에게 고의나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범위를 좁혀둔 구조입니다.
이 예외가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인지, 그리고 최근 스타트업 사고들과 맞물려 현장에서 왜 여전히 논쟁적인지는 연대책임만 별도로 정리한 글에서 짚어보겠습니다.
IPO 강제조항 완화 등 나머지 변화
이 밖에도 투자자가 일정 시점까지 IPO를 강제하던 조항이 완화됐고, 조항마다 중요도 등급을 표시하는 방식이 도입됐습니다.
SAFE에 대응하는 조건부지분투자, 컨버터블노트에 대응하는 조건부지분전환사채도 표준 서식에 편입돼, 초기 단계의 다양한 투자 방식이 표준 문안에서 출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번 개정은 개별 조항을 손본 수준이 아니라, 계약의 구조와 기본값 자체를 다시 설계한 개편에 가깝습니다.

창업자가 실무에서 먼저 확인할 것
새 계약서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볼 것은 계약서가 몇 장으로 왔는지, 즉 SPA와 SHA가 분리된 분리형인지입니다.
그다음으로 발행되는 주식이 CPS인지 RCPS인지, 상환권이 붙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 계약서를 접하는 분들이 가장 많이 헷갈려하는 부분이 "표준계약서니까 다 똑같겠지"라는 생각입니다.
표준계약서는 어디까지나 권고안이고, 실제 조건은 투자자와 회사의 협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집니다. 표준안에서 출발하되 어떤 조항이 어떻게 수정됐는지를 반드시 대조해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표준계약서를 꼭 써야 하나요? 강제는 아닙니다. 권고안이라 개별 계약의 조건은 당사자 협상으로 달라집니다. 다만 상당수 투자가 이 틀을 기준으로 진행되므로, 내용을 알아두면 협상에서 기준점을 잡기 쉽습니다.
Q. 예전에 RCPS로 투자받았는데, 이번 개정 때문에 계약을 바꿔야 하나요? 이미 체결된 계약이 자동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개정은 앞으로 맺는 계약의 표준을 바꾼 것이며, 기존 계약의 변경은 당사자 간 별도 합의가 필요합니다.
Q. CPS가 권고안이면 앞으로 RCPS는 못 쓰나요? 아닙니다. RCPS도 다섯 유형 중 하나로 계속 제공됩니다. 기본 권고가 CPS로 옮겨간 것일 뿐, 상환권이 필요한 거래에서는 여전히 RCPS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
2026년 벤처투자 표준계약서 개정의 큰 방향은 계약 구조를 정비하고 창업자 부담을 줄이는 것입니다.
계약서를 두 개로 나누고, 기본 주식을 CPS로 옮기고, 리픽싱과 연대책임을 창업자에게 덜 불리한 쪽으로 조정한 것이 핵심입니다.
다만 제도의 방향과 투자 현장의 체감은 늘 일치하지 않습니다.
창업자 보호가 강해질수록 투자자의 안전장치는 줄어들고, 그 긴장은 실제 계약 협상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 온도차가 어디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이어지는 글에서 이해관계인 연대책임과 투자자 사전동의권을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